백병생우기야 (百病生于氣也)
"모든 병은 기로부터 생긴다." 라는 뜻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과연 한방에서 이야기하는 '기'란 무엇이고, 위의 이야기는 맞는 이야기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인터넷에 기(氣)를 검색해보면, 매우 다양한 해석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양의 철학에서도 기(氣)를 정의하고, 동양의 역사에서 수없이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기(氣)를 하나하나 전부 열거하고 모두 설명하기에는 제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아닐 뿐더러, 이미 나와있는 해석들보다 잘 풀어낼 자신도 없기에 오늘은 한방에서, 특히 한방병리와 한방생리적 관점에서의 '기'를 자세히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또한,본 글에서는 기(氣)의 원론적이고 이론적인 개념을 모두 통틀어 담기보다는, 여러가지 한방의 용어를 이야기하며 너무 막막하게 느껴지는 기(氣)에 대한 기본적 개념을 함께 잡아나가 보고자 합니다.
1. 표의문자의 특징으로 인한 기(氣)의 다의성
한자는 표의문자로, 한 글자 한 글자가 각각 의미를 가지며, 맥락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는 문자입니다. 특히나 문자를 통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비싸던 옛날에는 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하지 않는다거나, 한 글자로 다양한 뜻을 담는 등의 '기록량을 줄이는 노력'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현대인이 보기에는 아리송한 것이 사실입니다. 책에 매번 '이번에 표현된 '기'는 어떠한 관점에서 어떤 개념을 표현한 '기'이다~' 라고 설명하기엔 효용이 많이 떨어졌을 테니까요.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현대인들이 기(氣)를 이해하는 것을 한단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질 본 글을 통해 다양한 옛 서적에서 '기'라는 표현을 발견하면 "아 이 부분의 기는 이러한 뜻으로 해석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실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2. 기(氣)의 의미 - 체내 에너지
'기허(氣虛, 체내 에너지 부족)', '기핍(氣乏, 기허의 심화)' 등의 한방 용어에서 알 수 있듯, 기는 체내의 에너지를 의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나, 노화로 인해 몸이 약해지거나, 질병으로 인해 기운이 없거나, 체질상 체내의 에너지양이 원래 많지 않은 사람 등의 경우라면 기허(氣虛)증이 올 수 있는데, 이때의 '기'는 체내의 전반적인 에너지를 이야기합니다.
체내의 에너지는 체열(열에너지)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집니다. 인체는 음식으로부터 소화를 거쳐 에너지를 얻는데(ATP), 이 과정에서 열이 발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기력이 허한 사람이 체열이 많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허냉', '열실'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통해 '기는 체내 에너지를 의미하며, 이는 체열의 양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3. 기(氣)의 의미 - 활동성/대사력
선천지기(先天之氣,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기), 후천지기(後天之氣,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기)를 통해 사상체질을 나누는 방법을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태음인은 선천지기가 크고 후천지기가 작아(가지고 있는 체내 에너지 양은 많으나, 대사에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이 적기 때문에) 쉽게 축적되는 간대폐소형의 사람이다.' 또는 '소양인은 선천지기가 작고 후천지기가 많아(가지고 있는 체내 에너지 양은 적으나, 대사에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이 많기 때문에) 쉽게 신수(혹은 정)가 마르고, 대체로 체열이 많은 신소비대형의 사람이다' 등의 이야기 말입니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기'는 사람이 갖는 활동성이나 대사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는 2번에서 설명한 '기는 체내 에너지를 의미한다'는 이야기와도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집니다. 애초에 '체내 에너지' 라는 것이 활동성과 대사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4. 기(氣)의 의미 - 소화
평위산의 '기평즉지(氣平卽止, 소화가 평온해지면 즉시 복용을 멈춰라)', 변비약을 의미하는 '하기제(下氣劑, 변을 아래로 내려 배출하는 약)' 등의 한방 용어에서 알 수 있듯, 기는 소화를 의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번에서 기는 체내 에너지를 의미할 때가 있다고 했는데요, 우리는 몸을 구성하는 물질과, 몸을 움직이는 에너지를 거의 모두 음식으로부터 얻습니다. 따라서, 몸속에 존재하는 음식물의 소화 또한 '기'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소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기가 제대로 유지되고 순환할 수 없겠죠.
5.기(氣)의 의미 - 혈액 자체를 제외한 순환하는 물질들
먼저, 기는 호흡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한방에서 표현하는 증상 중 기천(氣喘, 숨이 차는 증상 또는 천증 모두를 의미), 단기(短氣, 호흡이 얕고 원만하지 못한 증상) 등의 한방 용어에서 알 수 있듯, 기는 호흡 및 기체순환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체내에서 일어나는 물질교환으로 인한 현상들, 순환계의 현상들 대부분을 기라고 표현합니다. 옛날 한방에서는 혈액을 제외한 무언가가 제대로 순환하지 못해서 생기는 다양한 증상들을 '기가 울체되었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는 순환하는 많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다만 모든 순환물질을 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은데, 이는 혈액 등으로 '기'에 포함되지 않고 따로 분류되어 이야기되는 물질들 또한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6. 기(氣)의 의미 - 정신
마지막 6번은 지금까지 해온 이야기와는 조금 결이 다릅니다. 어쩌면 외전 혹은 보너스에 가깝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기는 정신력 혹은 그 사람이 갖는 분위기를 나타낼 때도 있습니다. '기가 세다' 라는 표현은 그사람이 갖는 정신력 혹은 분위기가 강렬하다는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이는 한방의 의학적 측면에서 사용되던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의 다양한 쓰임새를 이야기하는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7. 글을 마치며
이렇듯 '기'가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알아보고 나니, 제일 처음 이야기한 '백병생우기야'는 맞는 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몸을 구성하고 유지시키는 물질을 얻기위한 소화와 호흡도 포함하고, 이를 통해 얻은 산물을 체내에 순환시키는 것 또한 포함하고, 얻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도 포함하고, 심지어 육체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개념도 포함하는 매우 광의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감히 어떤 병이 '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습니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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